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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2] 복사꽃 [복숭아꽃, peach blossom; Prunus persica]손 가는 대로/꽃, 식물 2020. 4. 12. 01:14728x90
[04/12] 복사꽃 [복숭아꽃, peach blossom; Prunus persica]
학명(學名, binomial name): Prunus persica (L.) BATSCH
이명(異名): 복사나무
계(界, Kingdom): 식물계(Plantae)
문(門, Division): 속씨식물문, 현화식물문(Magnoliophyta), 피자식물문(Angiospermae)
강(綱, Class): 쌍떡잎식물강(Dicotyledoneae), 목련강(Magnoliopsida)
목(目, Order): 장미목(Rosales)
과(科, Family): 장미과(Rosaceae)
속(屬, Genus): 벚나무속(Prunus)
종(種, Species): 복사나무(Prunus persica)
개화(開花, Florescence): 4월~5월; 주황색
형태: 낙엽 활엽 소교목
꽃말: 사랑의 노예(slave of love), 사랑의 포로(captive of love); 매력(魅力, charm), 유혹(誘惑, temptation), 용서(容恕, forgiveness), 희망(希望, hope); 수명이 긴(Long-life), 너그러움(generosity), 신부의 희망(bridal hope); (중) 장수(長壽, longevity); 행운(幸運, good luck), 부귀(富貴, wealth)
□ 신선, 불사
중국에서 복숭아는 장수의 상징으로서의 천도(天桃), 선도(仙桃)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러한 신선과 관련된 사상은 중국에서는 다양한 글들에 등장합니다.
● 신선 (문헌)
선인(仙人)의 행적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장생불사를 중심 주제로 한,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신선 설화집인 유향(劉向, BC 77~BC 6)의 열선전(列仙傳)에서는 고구공(高丘公)이 도교(桃膠)를 먹고 신선이 됩니다. (유향의 작품이 아닌 후대의 위작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중국 동진(東晋, 317∼419) 시대의 학자인 갈홍(葛洪, 283∼343)이 지은 포박자(抱朴子) 선약(仙樂)권에는 복숭아나무에서 나는 진인 도교(桃膠)를 뽕나무 재(灰)의 즙(汁)에 절여서 마시면 곡단(穀斷)을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곡식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은 신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불로장생 (전설, 소설)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서왕모(西王母)는 중국 대륙 서쪽에 있는 곤륜산(昆侖山)에 살고 있는 여신입니다. 도교에서는 최고의 여신으로서 모든 신선들을 지배하는 신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서왕모의 과수원에는 복숭아가 열렸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민간에 전해내려오던 전설과 화본을 기초로하여 명나라 오승은(吳承恩, 1500~1582)이 창작한 서유기(西遊記)에서 옥황상제는 손오공(孫悟空)에게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는 관직을 내리고 반도원(蟠桃園)을 지켜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손오공은 이 복숭아를 모두 훔쳐먹고 천년장수하게 됩니다.
중국 설화 속에서 삼천갑자(三千甲子=18만년)를 살았다는 장수의 대명사인 도교의 신 동방삭(東方朔, dongfangshuo)도 하늘나라 서왕모의 복숭아인 반도(蟠桃)를 3개 훔쳐먹고 무병장수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 장수 (풍습)
중국에서는 남아의 탄생일에는 복숭아를 가지고 사슴을 거느린 장명(長命)의 신인 남극수성(南極壽星)을, 여아의 탄생일에는 역시 복숭아를 가진 아름다운 마고선녀(麻姑仙女)의 화상을 제단(祭壇) 등에 걸어 축복한다고 합니다. 또한, 생일 선물로는 복숭아 모양으로 만든 만두나 과자로 된 수도(壽桃)나 복숭아의 그림 등을 좋아했다고 하며, 중국에서는 생일 축하연을 도준(桃樽), 축의(祝儀)를 도의(桃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벽사(辟邪), 구마(驅魔), 축귀(逐鬼)
복숭아나무에는 벽사(辟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복숭아에는 축귀구마(逐鬼驅魔)의 영력(靈力)이 있어서 흉사불상(凶邪不祥)이나 마령악귀(魔靈惡鬼)의 해로부터 이탈하는 주물(呪物)로 인식되었습니다.
● 중국
산해경(山海經)에는 일문(逸文) 등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옛날 동해에 떠 있는 도삭산(度朔山)이라고 하는 산에 커다란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그 가지와 잎이 사방 3천 리에 걸쳐 퍼져 있었습니다. 낮게 드리워진 가지의 동북방의 방각(方角)을 귀문(鬼門)이라 하였는데 거기에는 여러 귀신들이 출입하는 장소로 되어 있었습니다. 귀문 위에는 신인(神人)이 있는데 한쪽을 신도(神荼), 또 한쪽을 울루(鬱壘)라 하였습니다. 두 신은 천제(天帝)의 명에 의하여 이 문을 지키면서 백귀를 열령(閱領)하고 있었죠. 만약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악귀가 있으면 갈대[葦]의 끈으로 묶고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을 쏘아서 호랑이에게 먹히도록 하였답니다.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BC 179~BC 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하(夏)나라 시대에 유궁(有窮)이라는 나라의 임금인 예(羿)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는 하의 천자 자리를 빼앗아 그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활을 잘 쏘는데 힘입어 정치, 도덕적으로 비도(非道) 악역(惡逆)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망을 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힘이 세어 사람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죠. 마침내 한착(寒浞)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복숭아나무로 만든 큰 방망이로 그를 후려쳐서 쓰러뜨려 죽임으로써 위해를 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경(五經) 중 하나로 주(周)나라 말기에서 진한(秦漢)시대까지의 예(禮)에 관한 학설을 집록한 예기(禮記)의 천궁(擅弓) 하(下)편에 '임금이 신하의 상(喪)에 갈 때는 무축(巫祝)으로 하여금 도열(桃茢)을 잡고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하게 한다'라고 나와있습니다.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229~589년), 또는 진나라(晉, 265~420)의 대조(戴祚)가 편찬한 견이전(훤이전, 甄異傳)에는 동도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안휘(安徽)의 초군(譙郡)이란 고을에 문규(文規)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어느날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 년이 되는 날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그는 30~40일만에 한 번씩 집에 와서는 반나절 정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다가 다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뜰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바라보면서 '이 복숭아나무는 옛날 내가 심은 것인데 이제 열매가 열게 되었구나'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망령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고 세간에서는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거짓말인가요'라고 물으니까, 문규는 말했습니다. "이 나무는 조금도 무섭지 않소. 가지가 동남쪽으로 뻗어 태양이 있는 쪽으로 향해 있는 복숭아나무가 무서운 거요. 그 밖의 복숭아나무는 별로 무섭지 않아요"
중국 명나라 때의 본초학자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엮은 약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도 옛날에 귀신의 두목이 복숭아나무로 맞아 죽은 일이 있으므로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한국
고려 후기의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에는 얼음창고를 개방함에 앞서 얼음신인 사한(司寒)에게 고하는 축문인 개빙사한제축(開氷司寒祭祝)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桃弧]과 가시 화살[棘矢]로 부정을 제거했음을 말합니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문집인 익재집(益齋集)에는 복사나무의 가지와 갈대의 이삭으로 만든 비인 도열(桃茢)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2백년이나 된 거문고에 귀신이 붙어 있어 모두들 무서워했는데 추운 밤에 신의 말을 듣고 복숭아나무로 만든 빗자루[桃茢]로 때려서 물리쳤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조선초기의 학자인 성현(成俔, 1439∼1504)가 지은 필기잡록류(筆記雜錄類)에 속하는 책인 용재총화(傭齋叢話)에는 섣달 그믐날에 민간에서는 푸른 대나무의 잎, 엄나무의 가지, 익모초의 줄기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뭇가지를 모아 비를 만들어 북을 울리고 발을 구르며 문짝마다 쓸고 다니면서 악귀를 문 밖으로 쫓았는데 이 풍습을 방매귀(放枚鬼)라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용재총화에는 또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성현의 장인(丈人) 안공(安公)이 임천(林川) 원살이를 할 때, 한 소년이 고목을 베었는데 그 귀신이 옮아서 밤낮으로 온 마을을 미치광이처럼 쏘다녔다고 합니다. 이때 안공은 복숭아나무의 동쪽 가지를 잘라 장도(長刀)형으로 만들어 그 소년의 목을 베는 시늉을 하니 땅에 쓰러져 3일간 혼수상태가 되었다가 살아나서 광태(狂態)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유암 홍만선(洪萬選, 1643∼1715) 지은 농서 겸 가정생활서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도 '복숭아나무는 백귀(百鬼)를 제(制)하니 선목(仙木)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그것만 보면 꼼짝 못하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도 복숭아나무를 축귀의 상징으로 여겨 왔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귀신을 쫓는다는 속신으로 인해 복숭아는 다른 과일과 달리 전통적으로는 제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망자가 좋아하였다면 올리기도 합니다.)
□ 신통력
● 문헌
일연(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우리나라 문헌 중에는 복숭아의 신통력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복숭아나무의 신비한 영력을 지닌 도화녀(桃花女)가 왕의 혼과 관계하여 비형(鼻荊)을 낳습니다. 그리고 도화녀의 신통력이 비형에게도 이어져서 비형은 귀중(鬼衆)을 거느리고 놀거나 귀중을 영솔하여 대교(大橋)를 가설하는 것과 같이 귀신의 무리를 영도하는 위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 풍습
중국 북제(北齊, 550~577) 때에 노사심(盧士深)의 아내 최씨가 복숭아꽃과 눈으로 아이의 얼굴을 씻으면서 아이의 얼굴이 고와지고 빛이 나기를 빌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고려(高麗, 918~1392) 때에도 있었습니다. 복숭아나무의 신통한 힘이 어린이의 생명을 잡귀로부터 보호한다는 주술적 믿음이 있어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갓낳은 아이를 복숭아꽃과 흰 눈으로 세수시키는 도화세면(桃花洗面)의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 이상향
도연명(陶淵明, táo yuān míng, 약 365~427)이 진(晉)나라 때 무릉의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숲 속의 물길을 따라갔다가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방문하는 내용을 담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이상향으로 설명하였으며, 이후 무릉도원은 이상향을 대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 평화
옛날 중국에서는 전쟁을 중지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의사표현 수단으로 복숭아나무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오경(五經) 중 하나인 상서(尙書; 서경, 書經)에 따르면 주(周)나라 무왕(武王, wǔ wáng, BC 1087~BC 1043)이 전 왕조인 상(商, BC 1600~BC 1046)나라를 멸망시킨 후 전쟁중지의 의지를 전국에 표시하기 위하여 소를 도림(桃林)에 놓아 두었다고 합니다. 복숭아꽃이 피는 곳은 안정, 평화의 낙원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 여인
● 꽃
복숭아꽃은 아름다운 여인 가운데서도 요염한 여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도검(桃瞼)이나 도화검(桃花瞼)으로 표현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인들의 아름답고 진한 화장을 도화장(桃花粧)이라고 했답니다.
매화꽃이 옅은 화장[淡化粧]을 한 여인이라면 복숭아꽃은 짙은 화장[桃花粧]을 한 여인을 나타냅니다.
또한, 문일평(文一平, 1888~1939)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살구꽃이 요부형(妖婦型)이라면 복숭아꽃은 염부형(艶婦型)이라고 했습니다
● 외양
복숭아, 특히 수밀도(水蜜桃)의 익은 과실은 둥글고 연한 도색(桃色)으로 물들어져 윤기가 나는데다 표면에 가는 봉합선의 골이 있어, 여성의 몸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복숭아의 모양새를 여자의 벗은 엉덩이 같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이 지은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에서는 '복숭아 같은 엉덩이 치마 밑에 둥실(桃花團月掩羅裙)'이라고 표현이 나옵니다.
복숭아를 여인의 젖가슴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인 이상화(李相和, 1901~1943)는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 오너라'고 하여 아름다운 여인의 가슴을 복숭아 중에서도 맛과 향이 좋은 수밀도로 표현하였습니다.
● 미인
춘추시대(BC 771~BC 476) 약소국의 하나였던 식(息, Xī, BC 1122~BC 684)나라의 왕비 규씨(嬀氏)는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미녀로 소문이 났었는데 주위에서는 그녀를 도화부인(桃花夫人)이라 불렀습니다. 당시 강력했던 초(楚) 문왕(文王)은 규씨를 탐내어 식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살을 하여서 초 문왕의 손에서 벗어납니다. 훗날 한나라 시대에 재색(才色)을 겸비했던 도화부인을 애석하게 여겨 호북성 한양현(漢陽縣) 도화동에 그를 기리는 묘(廟)를 건립하였습니다.
당(唐, 618~907)나라 시인 최호(崔護, 약 704~754)는 처음 만난 여인을 못내 아쉬워 노래한 자신의 시,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에서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복숭아꽃 같다하여 인면도화(人面桃花)라고도 표현했답니다.
去年今日此門中 지난해 오늘 이 문 안에서는
人面桃花相映紅 얼굴과 복숭아꽃이 서로 붉게 비쳤네
人面不知何處去 얼굴은 간 곳을 모르겠건만
桃花依舊笑春風 복숭아꽃은 그때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구나
인면도화는 최호의 시에서는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형용하였으나,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경우 또는 경치는 예전과 같지만 그 경치를 함께 하던 연인은 곁에 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 이름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여자 이름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사소(娑蘇) 또는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라고도 불립니다. 중국 황실의 딸인데 해동(海東)에 와서 머물게 됩니다. 일설에서는 그녀가 처음 진한(辰韓)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다고 하며, 이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신라 시조인 혁거세(赫居世)와 알영(閼英)의 어머니라고 봅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의 도화랑(桃花娘)은 도화녀라고도 불렸으며, 얼굴이 아름다워 도화(桃花)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자용절대(姿容絶代) 수로부인, 미염무쌍(美艶無雙) 선화공주와 함께 삼국유사 3대 미녀 중 한 명으로, 자용염미(姿容艶美)하여 진지왕(眞智王)이 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동진(東晉, 317~420) 때의 서예가 왕헌지(王獻之, Xianzhi Wang, 348~388)는 애첩을 도엽(桃葉) 또는 도근(桃根)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여기에 도화(桃花)까지 포함해서 도(桃)자가 들어간 세 가지 이름은 그 이후에도 유녀(遊女)의 애칭으로 계속되었습니다.
● 결혼축복
그리고 시경(詩經)의 도요(桃夭)라는 시는 최고의 여성찬가이고 최대의 복숭아꽃 찬가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桃之夭夭 灼灼其華 싱그러운 복숭아 나무, 흐드러진 꽃
之子于歸 宜其室家 이 아가씨 시집가는 그 집안은 화목하리
桃之夭夭 有蕡其實 싱그러운 복숭아 나무, 풍성히 열린 열매
之子于歸 宜其家室 이 아가씨 시집가는 그 집안은 화목하리
桃之夭夭 其葉蓁蓁 싱그러운 복숭아 나무, 무성한 푸른 잎
之子于歸 宜其家人 이 아가씨 시집가는 그 집안은 화목하리
□ 부정적 의미
● 호색(好色)과 음란(淫亂)
점술이나 사주에 도화살(桃花煞)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호색과 음란을 뜻합니다. 도화살이 끼면 남자의 호색과 부인들의 음란을 불러일으켜서 과도하고 잘못된 성욕으로 집안의 패가망신 등 재앙을 당한다고 믿고 이를 꺼렸죠. 그래서인지 복숭아나무를 집 안에 심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또한, 산림경제에서는 우물 가에도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좋지 않다고 했답니다. 우물 가에는 많은 부녀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우물 가에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은 기생집 옆에 딸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기피했다네요.
● 비열 또는 간사
복숭아꽃은 때로는 지조가 없는 비열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복숭아꽃의 빛깔에서 유추되어 간사하다는 의미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 유박(柳璞, 1730~1787)이 지은 원예 전문서인 화암수록(花菴隨錄)의 화품평론(花品評論)에서는 화목 가운데 28우(二十八友)를 정하여 대부분의 꽃들에게 좋은 뜻을 지닌 벗의 이름을 정하였으나, 복숭아꽃은 요우(夭友)라 하여 절조가 없어 좋은 벗이 못된다는 이름을 붙여 주고 있습니다.
또, 복사나무 변종의 하나인 홍벽도(紅碧桃)를 평하기를 '아양떨고 말재주가 있는 풍도(馮道)와 같으니 궁중 안의 귀인이나 농신(弄臣)이라 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풍도는 중국 후주(後周) 때 사람으로 말재주가 있어 네가지 성(姓)에 열 사람의 임금을 섬겼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 불화
식물의 세계를 사람의 세계처럼 꾸며낸 임제(林悌, 1549~1587)의 화사(花史)에서도 복숭아나무는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동원(東原)의 도(陶)나라 시대에 무릉(武陵)에 있던 복숭아 족속들이 세력을 잡았다가 그들 사이에 알력이 생겨 홍(紅)과 백(白)의 두 갈래로 갈라져서 싸우게 됩니다. 그리하여 태평성대가 오래 가지 못하고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다고 합니다.
● 소인
당나라 때의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842)이 낭주(朗州)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도성으로 돌아와 조정 관리들을 비꼰 시를 지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다시 번주(播州)로 쫓겨가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14년만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에는 이미 정적들도 혹은 죽고 혹은 몰락하였는데,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百畝庭中半是苔 넓고 넓은 뜰 안에는 이끼 푸르고
桃花淨盡菜花開 복사꽃은 사라지고 채화만 피었구나
種桃道士何處去 복숭아 심은 자는 어디로 갔느냐
前度劉郞今又來 전번의 유서방이 여기 또 왔노라.
남송(南宋)시대의 육유(陸游, 1125~1210)는 도화(桃花)는 경박하고 유화(柳花)는 미쳤다[狂]면서 속인이 도리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깊어가는데 도리는 시절을 다투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시류를 타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리로 표현한 걸로 보여집니다.
Image: Prunus persica (peach blossom) | Date: 12 April 2017 | Author: Аимаина хикари | Source: Wikimedia Commons in the public domain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runus_persica_Kiev2.jpg | Camera location: 50° 27′ 51.44″ N, 30° 38′ 59.69″ E | Decimal: 50.464288, 30.649915
Image: Prunus persica (peach blossom) _ Date: 12 April 2017 _ Author: Аимаина хикари _ Source: Wikimedia Commons in the public domain _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runus_persica_Kiev2.jpg _ Camera location: 50° 27′ 51.44″ N, 30° 38′ 59.69″ E _ Decimal: 50.464288, 30.649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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