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입구에서
한 소녀가 말했다.
"신은 견딜 수 있을만큼의 시련을 준다는게 맞아? 그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시련을 준 '전지전능'하다는 신의 잘못 아냐?"
나는 아무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녀가 서있는 곳은 그녀가 말하는 사람들이 가버린 길의 초입이란 생각에. 그 문을 열면 돌이킬 수 없을 거란 직감에.
"많이 힘들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신이 있는지, 있다면 전지전능하긴 한 건지,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을 사랑하기는 하는 건지."
일단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
"그냥 너를 보면 지금껏 버텨온 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여. 에고 대견해라. 토닥토닥."
"뭐야? 난 진지하다고."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내가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너를 보면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는 생각이 들어. 나라면 그러지 못했을거야. 맞아.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는게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어떻게든 이겨낸 사람들이 지나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
잠시 숨을 돌린다.
"신은 애벌레는 길다면 길고 짧다는 시간을 고치에서 보낸 후 나비가 되도록 만들었어. 하지만, 모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건 아니야. 때론 애벌레 상태에서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고치 안에서 말라 죽기도 하지. 혹자는 완벽하지 못하다며 신을 부정하고, 혹자는 신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에게 준 자유의 댓가라고도 하지. 어느 쪽이든 변하는 건 없어. 좁고 답답한 고치 속 시간을 이겨내야 나비가 될 수 있어. 그리고 넌 그럴 수 있어. 아직 좀더 남긴했지만 이미 힘든 순간들을 잘 넘겨왔잖아."
"쳇."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무시? 갑자기 나를 돌아본다.
"넌 왜 내게 그렇게 잘 해줘?"
"어?"
뜬금없는 말이 당황스럽다.
"...잘 해 주기는. 그냥 있었던 뿐인데."
그냥 우연히 만나 그저 그 자리에 서있었던 건데. 그 조차도 잘 해 준다고 생각한다니... 힘들었구나.
***
하얀 눈송이가 꺼내놓은 이야기.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생각하보면 어느덧 30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싶기도 하고...
힘들어 하던 한 소녀도 이젠 아줌마가 되었겠구나 싶어집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힘들었던 만큼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알고 그 행복을 누리고 있기를 바랍니다.
Image: English: The Girl at the Door by Ivar Arosenius (1878–1909) from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m.wikimedia.org/wiki/File:The_Girl_at_the_Door._Interior_of_the_Artist%27s_home,_%C3%84lv%C3%A4ngen_(Ivar_Arosenius)_-_Nationalmuseum_-_19704.tif in the public domain in its country of origin and other countries and areas where the copyright term is the author's life plus 100 years or l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