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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과 미로손 가는 대로/그냥 2021. 1. 30. 14:47728x90
미궁과 미로
미궁(迷宮, labyrinth)이나 미로(迷路, maze)는 들어가면 쉽게 목적지를 찾기 어렵고, 심지어 다시 나오는 것도 쉽지 않은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단어 모두 헤메다, 헷갈리다라는 뜻을 가진 미(迷)라는 글자로 시작되죠. 차이점이라면 미궁은 집 궁(宮)이 있어서 찾아가는 길 보다는 공간 전체를 의미하며, 길 로(路)가 들어가 있는 미로는 복잡한 길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공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 미궁은 중심을 향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길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목적지인 중심까지 가는데 고민할 갈림길이 없습니다. 빠져나오는 것 역시 갔던 길을 따라 나오면 됩니다. 변형된 미궁의 경우 갈림길이 있고, 길이 복잡해서 다시 빠져 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Theseus)가 황소 머리와 인간의 머리를 한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루스(Minotaurus)를 물리치기 위해 들어간 크레타의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가 유명합니다. 그때, 아리아드네(Ariadne)는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죠.Edward Burne-Jones(1833–1898), Theseus and the Minotaur in the Labyrinth, 1861, Pencil, brown wash, pen and ink on paper, 25.5 x 26.1 cm, Birmingham Museum and Art Gallery
작자 미상,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16세기 초, 프티팔레 미술관, 아비뇽
아리아드네는 붉은 실을 주었지만, 붉은 실이 아니어도 미궁은 위에서 보면 한붓 그리기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한쪽 벽면을 따라가면 시간의 문제이지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죠.
미로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나뉘어져서 길을 찾기 어렵게 합니다. 한쪽 벽면에 손대고 가는 방법을 잘못 택하면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될 수도 있죠.
영화 메이즈러너(The Maze Runner, 2014)를 보면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로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미로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합니다.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은 이런 경우 무의미해집니다. 구조는 변하고, 목적은 되돌아 나오는 것이 아닌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화하는지까지 원리를 알아야 하죠.
예전 기업 환경은 미노타우루스의 미궁에 가까웠습니다. 길을 찾는게 그 때도 쉽지는 않았지만 1등할 생각만 아니라면 누군가를 따라가도 되었습니다. 한때, 1등을 따라가는 2등 전략이 유행하기도 했죠. 시장에서 1등은 못하더라도 막대한 투자비와 시간을 아낄 수 있기에 실속이 있다는 주장이었죠. 또한, 아리아드네 같은 컨설턴트들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변화는 메이즈러너의 미로에 더 가까워보입니다. 1등이 지나간 길이 그대로 남아있지 않기도 합니다. 더우기 계속 바뀌는 환경 속에서 1등은 영원한 1등이 아닙니다. 변화의 구조를 알고,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아야 하죠.
전문가의 도움이 예전보다 더 필요한데, 전문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변화를 놓친 채 철지난 사고와 방법을 제안하는 사람들도 많죠.
기업 내부적으로는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회의체들은 빠른 의사결정도, 통찰력 있는 의사결정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오너나 오너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권한과 임기, 그리고 무엇보다 능력과 통찰력을 지닌 경영자를 더 필요로 하는 시기일 수 있습니다.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