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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와 통신서비스 사업손 가는 대로/그냥 2021. 4. 8. 21:14728x90
LG와 통신서비스 사업
LG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 예기된 일이지만, 아쉽기도 합니다. 통신을 미래의 먹거리로 생각해 그룹차원에서 확대하려던 LG. 한동안 시장에서 우려했던 것은 단말기 보다 통신서비스 쪽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지만, 한솔PCS 인수 불발 직후, 사업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고 하죠.
그룹의 이통통신 단말기 제조를 담당했던 LG정보통신이 LG텔레콤 컨소시엄을 주도하며 그룹의 통신서비스 부분을 초기에 이끌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독점이었던 이동통신시장이 PCS 사업이 민간기업들에게 개방되면서 이동통신서비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고, LG텔레콤은 1996년 설립되었으며, KT프리텔, 한솔PCS와 함께 PCS 사업자 인가를 받고 1997년 무선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초기 대규모 투자시에는 공기업 자회사였으며, 가입자는 독점적으로 모으던 SK텔레콤을 보며 생각했던 마냥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안정적인 사용자와 수익을 회수하고 있던 SK텔레콤을 따라잡기는 어렵고, SK텔레콤 외에도 이미 사업을 하고 있던 신세기통신이 있었죠. PCS 3사까지 하면 총 5개의 이동통신회사가 경쟁을 해야하는데 대규모 투자를 해야했습니디.
컨설팅 회사들은 우리나라 시장 규모를 보면 3개만 살아남을 거라고 했고, 당시 어느 곳에서든 상위 3개사만 살아남는다는 3의 법칙이 유행하며 위기감을 높입니다.
이동통신 부문자체의 변화도 있었지만, LG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며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됩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실질적인)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대기업들의 사업부 교환인 빅딜을 밀어붙입니다.
형식은 자율이었지만, 자율이 아닌 빅딜이 이루어지죠. 여기에서 엘지는 반도체를 반강제적으로 매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긴 현금으로 대한생명을 인수하려고 했지만, 대형생명보험사를 한화그룹보다 큰 대기업이 인수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정부가 반복적으로 압력을 가하자 결국 검토를 진행하다가 인수를 포기하게 됩니다. 현금은 있고, 투자할 것을 찾던 엘지는 PC통신 천리안으로 한때 인기를 끌다가 내리막길에 들어선 대형통신사 데이콤을 2000년 소유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인수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내리막길에 들어선 데이콤을 그 가격에 인수하는 것에 부정적이었지만, 통신에 대한 염원, 컨설팅 회사의 (이해하기 어려운) 추천, 반도체 사업 매각 후 무언가 투자는 해야하는데 마땅한 대상이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엘지의 선택 폭은 크지 않았죠.
2001년 KT프리텔이 한솔PCS(한솔엠닷컴)를 인수 합병하고, 2002년에는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합병하며 1위 자리를 굳건히 한 상황에서 LG텔레콤의 홀로서기는 더욱 힘겨워 보였습니다. LG 내부에서도 매각을 심각하게 검토하였으나, 팔기도 만만치 않았죠. SK텔레콤(SKT)과 KT프리텔(KTF)은 굳이 LG텔레콤(LGT)을 인수할 유인이 없었고, 제3자가 LGT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 보였으니까요.
2002년 11월 LGT의 가입자수는 478만명이었습니다. 500만명을 넘지 못하면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하였고,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그룹차원의 지원이 있었죠. 하지만, 2003년 11월 가입자수는 481만명으로 여전히 500만명을 하회합니다.
2004년 1월부터 휴대폰 번호이동제가 시작되고, LGT의 공격적 영업이 시작되며, 2월 드디어 500만명을 돌파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자, 회사는 독자생존 가능 가입자 수가 700만명이라고 바꿔서 말합니다.
그리고, 2006년에 700만명을 돌파하여 12월 701만명을 기록합니다. SKT 2,027만명, KTF 1,291만명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지만 회사가 팔리거나 사라질 위험은 현격히 줄어들었죠.
이후, 유무선 통신회사의 합병이 이어집니다. 2009년 KT가 KTF를 합병하여 유무선 통합 통신서비스 회사로 거듭난 후, 2010년 LGT는 LG데이콤, LG파워콤 등과 합병하여 LG유플러스라는 유무선 통합회사로 탄생합니다.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