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아침고요수목원. 해가 기우는 듯 하더니 산속의 그곳은 곧 어둠 속에 묻혔다. 그러나 그대로 집에 가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시간. 우리는 차안에서 실내등을 켜고 머리를 맞대었다. '길'을 모르기에 어둠 속에서 어디로 옮기기에는 부담스러웠지만....
동해로 가서 가을바다를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 언제나 바쁘지 않으면 게을러서 이렇게 교외로 나와보지 못했던 나였기에 오늘만큼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는 그냥 해본 말이었다며 됐다고 했지만 이미 차는 동해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였다. 어둠 자욱 내린 시골길은 캄캄하기만 했다. 마을을 지나 나즈막한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눈앞에 환한 빛이 비췄다. 망설임없이 우리 쪽으로 돌진하는 빛...... 순간 일방통행길을 잘못 들어선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럴리는 없겠지 하면서도...
불빛은 계속 다가왔다. 환히 불을 켜고 있는 우리를 못본게 아닐텐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난 두어번 경적을 울렸다. 그러나 차는 계속 우리쪽으로 다가왔다.
쿵-.
충돌의 느낌이 전해온다.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상대방 쪽에서는 운전사가 아닌 조수석에서 한 여자가 내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 어둠속에서 내가 잘못들어 선 걸까?
그러나 그 벌겋게 달아오른게 술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건 오래지 않아서였다. 보통 이럴 경우에는 운전자도 음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독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든지 뜯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날은 무엇보다 동해로 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교통사고'보다는 '지체'에 더 신경이 쓰였다. 다시 그녀를 돌아봤다.
"괜찮아?"
괜찮은 것 같지만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더 무섭다는 말에 연락처는 받아들고 그곳을 떴다. 해를 찾아 東으로-.
무거운 어둠이 주위를 감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스쳐지나가는 불빛들을 제하면... 나즈막한 radio 소리. 그리고 그녀와의 대화. 서로를 자욱이 누르는 진지함에서 어이없는 허탈한 가벼움까지. 그건 일출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의도되지 않은 준비였다. 얼마후면 휴식에 들어갈 꾸불텅한 대관령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