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나무: 헤르메스의 지팡이
올림포스 12신에 속하는 헤르메스(Hermes, Ἑρμῆς)는 제우스와 티탄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전령의 신이자 여행의 신, 상업의 신, 도둑의 신이기도 합니다.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을 신고 두 마리 뱀이 감겨 있는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인 케리케이온(kerykeion)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헤르메스는 태어난 날부터 조숙하고 민첩하고 활동적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요람에서 기어나와 마케도니아의 피에리아로 갑니다. 아폴론이 목동으로 일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아폴론이 음악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아폴론의 소떼를 훔칩니다. 혹자에 의하면 밤에 몰래 훔쳤다고도 합니다.
헤르메스는 훔친 소떼를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알페이오스 강가에 있는 필로스 동굴로 끌고 가서 숨깁니다. 이 때 바토스라는 노인이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바토스는 수다쟁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헤르메스는 바토스에게 잘 생긴 소 한 마리를 줄 테니 아무에게도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바토스는 돌이 고자질을 하는 일은 있어도 자신이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래도 믿음이 가지 않았기에 헤르메스는 돌아가는 척하다가 변장을 하고 노인 앞에 다시 나타납니다. 그는 노인에게 자신이 소떼를 잃어버렸는데 혹시 못 보았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면 대가로 소 두 마리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토스는 소가 있는 장소를 알려줍니다. 이에 헤르메스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바토스를 돌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어, 헤르메스는 훔친 소 중 몇 마리를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친 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킬레네 동굴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한편 소떼가 없어진 것을 눈치 챈 아폴론은 사방을 헤매다 킬레네 동굴로 갑니다. 아폴론은 태평스럽게 침대에 누워있는 헤르메스에게 자신의 소를 돌려 줄 것을 요구하지만 헤르메스는 끝까지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발뺌합니다.
결국 제우스가 이 분쟁의 중재자로 나섭니다.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당장 아폴론의 소를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제우스의 명령을 들은 헤르메스는 대신 동굴 입구에서 만난 거북이의 등껍질로 만든 리라를 아폴론에게 화해의 선물로 내놓습니다.
음악의 신 아폴론은 아름다운 리라 소리에 매료되어서 헤르메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아폴론과 헤르메스는 리라와 소떼를 교환하고 화해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폴론은 헤르메스에게 날개 달린 지팡이 케리케리온까지 선물하죠. 일설에 의하면 이 지팡이가 개암나무로 만들었다고도 하며, 여기에서 화해(和解, reconciliation), 평화(平和, peace)라는 꽃말이 나옵니다.
전승에 따라서는 리라와 소떼를 교환한 뒤 얼마지나서 헤르메스가 이번에는 피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폴론은 이 악기를 갖고 싶어서, 그 대가로 케리케이온을 주었다고도 합니다.
헤르메스의 라틴어 명칭인 Mercurius는 영어 merchandise, mercari(거래, 무역), merces(품삯)의 어원이라고 합니다.
Image: 아폴론이 음악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황소를 훔치는 헤르메스 | Author: Claude Lorrain (1604/1605–1682) | Date: circa 1645 | Source: Wikimedia Commons in the public domain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laude_Lorrain_01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