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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19] 봉선화 [봉숭아, garden balsam, 鳳仙花; Impatiens balsamina]
    손 가는 대로/꽃, 식물 2020. 10. 19.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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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9] 봉선화 [봉숭아, garden balsam, 鳳仙花; Impatiens balsamina]

    학명(學名, binomial name): Impatiens balsamina
    이명: 봉숭아, 봉새, 금봉화, 金鳳花, balsam, garden balsam, rose balsam, touch-me-not, spotted snapweed; (속)  impatiens, jewelweed, touch-me-not, snapweed, patience, busy lizzie
    계(界, Kingdom): 식물계(Plantae)
    문(門, Division): 속씨식물문, 현화식물문(Magnoliophyta), 피자식물문(Angiospermae)
    강(綱, Class): 쌍떡잎식물강, 목련강(Magnoliopsida)
    목(目, Order): 무환자나무목(Sapindales), 진달래목(Ericales)
    과(科, Family): 봉선화과(Balsaminaceae)
    속(屬, Genus): 봉선화속(Impatiens)
    종(種, Species): Impatiens balsamina
    개화: 6월~9월; 백색, 자주색, 붉은색, 분홍색, 주홍색, 보라색 등

    꽃말: 정결(貞潔, chastity), 날 건드리지 마세요(Please don't touch me); 정결(淨潔, cleanliness); 부귀(富貴, riches and honors), 여린 아이같은 마음씨(tender-hearted), 아이같은 마음씨(childlike nature); 열정적인 사랑(ardent love)

    봉선화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명나라의 학자 왕상진(王象晋. 1561~1653)이 저술한 식물도감 형태의 이여정군방보(二如亭群芳谱)에 나오는데, 줄기와 가지 사이에 꽃이 피며 봉황새의 형상을 가져 봉선화라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봉선화에 대한 기록은 1241년 고려 후기의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펴낸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봉상화(鳳翔花)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다고 합니다. 7월 하순이면 오색으로 꽃이 피어 비바람이 불어도 열매가 자라 씨가 터져나는 꽃을 봉상화(鳳翔花)라 한다는 것이죠.

    속명의 Impatiens는 참지 못한다는 뜻의 라틴어 impatient에서 왔으며, 이 식물의 삭과를 건드리면 터지는 특성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 풍습

    ● 봉선화 물들이기
    봉선화꽃을 백반과 함께 짓이겨 손톱에 동여맨 후 하루가 지나면 곱게 물드는데, 이와 같은 봉선화의 꽃물을 손톱에 들이는 이야기가 우리나라 문헌에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중기의 문신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이 펴낸 양곡집(陽谷集)에 전해지는 시 봉선(鳳仙)에서 입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물들이는 풍습은 훨씬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鳳仙(봉선)

    夭嬌柔枝帶雨斜 가냘프고 어여쁜 가지 비 맞아 기울더니
    薰風開遍女仙家 훈풍에 미인의 집 봉선화가 활짝 피었네
    纖纖指甲須紅染 가늘은 손가락 여린 손톱에 붉은 물 들이려
    共把金盆夜搗花 고운 질그릇에 밤새 꽃을 찧고 있구나

    ● 벽사(辟邪)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는 것도 악귀나 역귀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 본래의 뜻이었을 거라고도 합니다. 봉선화는 악귀나 역귀(疫鬼)의 침입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으며, 악귀나 역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집안의 울타리 밑이나 장독대 밑에 심었다고 합니다. 특히 장독대는 생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어서 그 주위에 봉선화를 심어 이곳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또 평안도 지방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밭 둘레에 봉선화를 심어 작물의 병충해를 방지하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 신화, 전설

    ● 봉선이의 전설
    백제에서 한 여자가 선녀로부터 봉황 한 마리를 받는 꿈을 꾸고 딸을 낳아 봉선이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전승에 따라서는 고려 때라고도 합니다. 봉선이는 곱게 커서 천부적인 거문고 솜씨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집니다. 그러다 보니 임금님의 앞에까지 나아가 연주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죠. 그러나 궁궐에서 연주를 하고 돌아온 뒤부터 봉선이는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임금님의 행차가 집앞을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봉선이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하여 거문고를 연주하였습니다. 이 소리를 알아듣고 찾아간 임금님은 봉선이의 손으로부터 붉은 피가 맺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매우 애처롭게 여겨 무명천에 백반을 싸서 동여매주고 길을 떠났습니다. 봉선이는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봉선이가 묻힌 무덤에서 이상스런 빨간 꽃이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빨간 꽃으로 손톱을 물들이고, 봉선이의 넋이 화한 꽃이라고 하여 봉선화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 결백한 아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남편에 대한 항거와 결백의 표시로 자결을 하고 만 여자의 넋이 봉선화로 피어났다고도 전해집니다. 이는 봉선화의 특징에서 나온 이야기로 보이며, 봉선화 씨를 조금만 건드려도 툭 튀어 나가는 것은 자신의 몸에 손대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고려 충선왕(忠宣王. 1275~1325)
    고려 26대 충선왕은 고려 25대 충렬왕(忠烈王)과 몽골제국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몽골에서 보내온 공주보다 조비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당시 고려를 지배하던 몽골의 미움을 받아 왕위를 내놓고 몽골 수도로 불려가서 살게 되었답니다. 몽골 생활을 하던 중 충선왕은 어느날 한 소녀가 자기를 위해 가야금을 타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소녀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왕은 꿈이 하도 생생하여서, 기이하다 생각하였습니다. 왕은 궁궐 안에 있는 궁안의 사람들을 모조리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소녀가 손가락을 흰 헝겊으로 동여매고 있는 것을 보았죠. 왕이 그 소녀의 신분을 알아보니 고려에서 온 소녀인데 손가락을 동여매고 있는 것이 고려의 풍습인 봉선화 물들이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남의 나라에 와 있으면서도 자기 나라 풍습을 지키는 것을 갸륵히 여겨 소녀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녀가 이곳에 온 이유가 소녀의 부친이 충선왕파라 하여 면직당하고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소녀는 이곳에 와 계시는 충선왕에게 준비한 가야금 가락을 들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가락은 왕이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노래였습니다. 왕은 크게 감명하여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뜻을 품고 원나라 무종이 왕위에 오를 때 크게 도와 준 공으로 고려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왕이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오른 뒤에 그 갸륵한 소녀를 불러오려 하였으나 소녀는 이미 죽은 후 였습니다. 왕은 소녀의 정을 기리는 뜻에서 궁궐 뜰에 많은 봉선화를 심게 하였다고 합니다.

    ● 그리스 신화
    어느날 올림포스 궁전에서 연회가 열렸습니다. 올림포스 12명을 위해 연회상에 오른 음식은 넥타와 암브로시아, 그리고 황금사과였습니다. 세명의 님프들이 각자 넥타, 암브로시아, 황금사과를 맡았고, 그 중 황금사과는 가장 막내 님프가 맡았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신이 자리에 앉고 보니 준비한 황금사과 중 한 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던 제우스는 신들의 앞에서 그 님프를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님프를 억울하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어느 장난이 심하던 한 신의 장난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우스가 너무도 심하게 화를 내자, 그 신은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님프는 누명을 쓰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 님프는 계속 필사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였으나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고 마음 고생만 하고 있던 그 님프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님프가 죽은 자리에 어여쁜 꽃이 하나 피어났는데 이 꽃이 봉선화였습니다. 사람들은 꽃이 너무 예뻐 살짝 만져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꽃은 씨주머니를 터트려 잎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 아니겟습니까? 아마도 죽은 님프의 영혼이 억울함에 꽃으로 환생하여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결백을 증명하려는 듯 자신의 속을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봉선화의 꽃말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touch-me-not)', '속단된 해결'이 생겨난 유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Image: Children with garden balsam (Impatiens balsamina) | CC-PD | Date: 27 August 2012 | Author: David E Mead | Source: Wikimedia Commons in the public domain (CC-PD)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ildren_with_garden_balsam_(Impatiens_balsamina).jpg

    Image: Impatiens balsamina | CC-PD | Date: Between 1823 and 1829 | Author: Kawahara Keiga (1786–1860?) | Source: Wikimedia Commons in the public domain (CC-PD)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aturalis_Biodiversity_Center_-_RMNH.ART.753_-_Impatiens_balsamina_-_Kawahara_Keiga_-_1823_-_1829_-_Siebold_Collection_-_pencil_drawing_-_water_colour.jpeg

     

    File:Naturalis Biodiversity Center - RMNH.ART.753 - Impatiens balsamina - Kawahara Keiga - 1823 - 1829 - Siebold Collection - pe

     

    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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