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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호 사건발 가는... [APAC]/[NZ]뉴질랜드 2023. 2. 19. 09:27728x90
보이드호 사건 (The Boyd incident)
1809년 12월 보이드호(The Boyd)는 황가로아 항구(Whangaroa Harbour)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보이드호의 유럽인들과 마오리(Māori)족 간 싸움이 있었습니다.
보이드호 직전에 왔던 유럽 선박으로 부터 전염병이 돌아서 원주민들이 죽었던 적이 있었기에 보이드호를 바라보는 마오리족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보이드호에는 70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 마오리족 족장의 아들 테 아라(Te Ara)도 있었습니다. 그는 선원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였습니다. 항해 중 병에 걸려서 그랬다는 설과 족장 아들인 자신은 허드렛일 같은 걸 할 수 없다는 태도가 문제였다는 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죠. 이유가 어떻든 테 아라는 항해 중 채찍질과 굶김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자신이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이에 격분한 마오리족 사람들은 보이드호를 습격합니다. 마오리족은 수적으로도 우세했지만, 전투에도 능해서 선원과 승객 66명을 제압합니다. 그리고, 전투 후 적을 먹는 식인 풍습이 있던 마오리족은 66명의 외지인들을 잡아먹습니다.
일부가 도망치는데 성공해서 이 사실을 알리는데 성공하죠. 당시 부족들마다 유럽인에 대한 생각은 달랐습니다. 적대적인 부족도 있었고, 호의적인 부족도 있었죠.
모두가 호전적이었다면 유럽은 더 많은 군대를 보내 더 큰 보복을 했을 것이고, 모두가 호의적이었다면 유럽은 뉴질랜드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노예화했을 거라고 합니다. 비극적 사건들은 있었지만, 부족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었기에 다른 지역의 식민지화 보다는 비교적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죠.
보이드 사건은 유럽인들의 뉴질랜드 진출에 가장 끔찍했던 사건 중 하나라고 합니다. 단순히 전투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식인까지 일어나다 보니 워낙 끔찍하게 여겨져서 보이드 학살(Boyd Massacre), 보이드 화재(Burning of the Boyd) 등으로도 불리는데, 해당 용어들이 원주민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들의 공격성만 부각시킨 용어라고 해서 보이드 사건(Boyd incident)이 공식적인 용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이 뉴질랜드가 유럽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미루기는 했지만 막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결국 뉴질랜드도 영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그렇지만, 마오리족의 무서움을 알았기에 다른 나라의 식민지화 보다 평화로운 절차로 식민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인근 호주가 백호주의가 극심한 것과 달리 다른 민족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유럽인들 중에는 뉴질랜드를 식인종의 땅이라고 생각해서 여행을 꺼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루이스 존 스틸(Louis John Steele), 보이드호의 폭발(The blowing up of the Boyd), 1889,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21.8 x 183.7 cm, 테 파파(Te 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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