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론
캐나다 어학연수 갔을 때 반에 중남미 학생들도 있었다. 인생에 있어 안 좋았던 일이 그날 주제였다. 그때 중남미에서 온 학생이 이야기를 했다. 어느날 은행을 갔는데 은행강도가 들었다고 했다. 은행강도는 은행에 있던 모든 사람의 옷을 전부 벗으라 하고는 은행의 돈을 털어 유유히 도망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학생의 이야기에 놀라며 정말 안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오히려 놀라며 반문했다. 누구나 살아가며 1~2번 정도는 은행강도를 당하지 않냐고...
그 말에 선생님이 다른 중남미 학생에게도 물었다. 너도 그런 경험이 있냐고. 그 학생은 옷을 벗으라고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은행강도 자체는 가끔씩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상위 몇%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듯 말하는 상위 몇 %론은 상위에 속하는 그들의 부와 지위를 굳건히하고, 그것을 세습하는데 근거가 되어준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갖는게 아니라 우리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당신들까지 먹여살린다는 근거. 그리고 부를 이용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서 후손들도 계속 상위 몇%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다.
물론 더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이 받는 것 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상위 몇 %론의 극단성이다. 그 몇 %에 들어가지 못하면 사회 또는 조직에 기여를 인정받지 못하고 기회까지 박탈당하고 마는. 물론 상위 몇 %론에서 그 안에 못 든 사람을 배척하거나 기회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제되어 있는 상위 몇 %가 나머지를 먹여살린다는 사고는 마치 몇 %만 사회나 조직에 기여하고 나머지는 잉여인간처럼 느끼도록 무의식 중에 심는다.
그러한 인식이 심화되면, 결국 위에 언급했던 모 나라 처럼 될 수 있다. 그들 나라 어린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희망직업은 축구선수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 나라에서 축구를 잘하는 이유가 상위 몇 %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 사이에서 비공식적으로 그에 못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희망직업이 있는데 바로 갱단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같다. 그 역시 상위 몇 %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또 다른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은행강도와 같은 범죄가 가까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것이 사회가 되었든 특정 조직이 되었든 상위 몇 %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살아가는 유기적 관계에 의해 돌아가는게 아닐까?
상위 몇 %론과 그 이론을 근거한 부의 집중. 그리고 부에 의해 재창출되는 기회. 이러한 부의 세습과 기회의 박탈은 결국 사회를 흔들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