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무죄, 그리고...

유죄, 무죄, 그리고...

법률적 유무죄와 실체적 유무죄는 다릅니다. 법률적으로 유죄의 경우 실체적 유죄일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고, 법률적 무죄의 경우에는 그 차이가 더 커집니다.

판사는 신이 아니고, 사건의 당사자도 아닙니다. 당연히 일부러 잘못된 판결을 하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판결이 100% 정확한 판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가 풀려나더라도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를 최소화하려고 하게 됩니다.

또한,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관행에 대한 우려로 인해 증거인정도 절차에 맞아야 인정을 하게 되죠.

개별사건에 대해서는 건마다 차이가 있으니 언급하지 않더라도 법률적 무죄가 실체적 무죄가 아닌 몇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피의자의 사망입니다. 피의자가 사망하게 되면 피의자의 방어권이 없어지고, 처벌에 대한 실익이 없어지기 때문에 기소권이 없어지게 되고 재판절차는 중단됩니다. 재판을 통해 법률적 유죄판결은 나올 수 없죠.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으니 법률상은 무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체적으로도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의자가 무죄를 밝히려 하기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정황상으로 보면 무죄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법률상 무죄가 실체적 무죄가 아닌 이상 유족들이나 지지자들이 자랑스러워할 사항은 아닙니다.

정말 무죄로 인정받고 싶다면, 피의자 방어권을 포기하더라도 재판을 진행해야겠죠. 고인이 남긴 증거물들도 훼손하지 말아야 하고요.

또다른 유형은 증거의 증거력입니다. 증거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준수하지 못해 증거로 인정받지 못해 법률적으로 무죄가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명확히 실체적으로 범죄행위를 했고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법적인 다툼에서 변호사들이 의뢰인이 유죄인 걸 알지만 무죄로 만들기 위해 공격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변호사들의 실체적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의뢰인이 빠져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검찰측과 피의자측의 법정 다툼이 서로 다른 증거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측 증거의 취득과정에 대한 흠결로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이는 실체적 유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률상 판결과는 별개로.

증거물이 조작된 거면 모르겠지만, 조작되지 않았지만 결정적 증거가 절차상 흠결로 인정받지 못해 무죄판결이 났다면 법률상 무죄라고 큰 소리쳐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사전동의 없는 녹취물을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가 국회의원들이 추진하려고 하죠. 하지만, 범죄자가 녹취에 동의할리는 없으니 이는 결정적 증거를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가깝죠. 찔리는게 많은 사람이.)

사법제도가 100% 정확히 범인을 가려낼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사법제도를 부정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 3자가 판단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이죠.

물론, 정말 잘못이 없고 법정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는데, 검찰에 의해 기소된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실질적으로 범죄행위를 한 것으로 보여지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면죄부를 넘어서 추앙까지 받아도 안되고, 누가 봐도 실제로 범행을 저질렀는데 조작되지도 않은 증거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유죄 인정이 되지 않았다고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본인은 마치 떳떳한 것처럼 행동을 해서도 안됩니다.

법적인 무죄추정의 원칙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나 훈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