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상자산에 대해 부정적 견해의 글을 몇 개 올린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혀 올리지 않고 있다 보니 계속 부정적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고, 마음이 바뀌어서 그런 거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받아들이고 있어도, 여전히 가상자산은 본질적 가치가 없는 자산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자산은 버블이고 그 가치는 0이 될 거라는 말은 아닙니다.
가상자산을 더 이상 사람들은 가상화폐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가상화폐라고 불렀죠. 화폐라면 필요한 안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폐 같은 성질이 있습니다. 바로 신뢰이죠.
최초 화폐의 형태는 조개 껍데기 같은 거였을 거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물물교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휴대가 간편한 조개 껍데기를 도입해서 정착이 되었다고 하는데, 초기에 사람들이 선뜻 조개 껍데기를 교환 수단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물교환은 서로 필요한 물건들, 본질적 가치가 있는 자산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조개 껍데기는 본질적 가치도 없고, 누구나 노력만 하면 주워올 수 있는 것이었죠. 본질적 가치가 없는 조개 껍데기가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것을 넘어 물건을 자산으로 축적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기 때문일 겁니다. 축적하기 위해서는 부패나 변질이 쉬운 실물이 아니라 보관 가치가 있어야 하니까요. 경제 활동을 주도하는 계층이 조개 껍데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사회에서는 조개 껍데기의 통용 가치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조개 껍데기는 이후 동전의 형태로 발전하죠. 많은 나라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금을 유통하기 쉽게 동전으로 만든 금화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금 자체가 본질적 가치가 있냐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금은 오랫동안 많은 지역에서 가치를 인정받아온 자산입니다. 이렇게 금을 직접 유통시키는 금화 본위제에서 화폐의 가치가 금의 가치에 그대로 연동이 됩니다.
하지만, 금화 본위제도 불편해지요. 금을 직접 유통시키는 것 자체도 불편하였습니다. 또한, 빈부 격차가 커지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금화는 하나를 가지기에도 힘든 반면,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보관하는 것이 귀찮고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금지금 본위제입니다. 발권은행이 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그 가치에 상응하는 화폐를 발행하는 체제이죠. 이때, 발권은행은 원할 때 금으로 교환해주겠다고 약속을 하는 한, 실제 보유한 금 이상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비슷하였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출범한 국제 통화 체제인 브레턴우즈 체제가 그렇습니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압도적 금을 보유한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해서 금 1온스를 미화 35달러에 고정을 시키고, 다른 나라의 통화를 달러화에 고정시키는 형태였죠. 하지만, 달러 발행이 증가하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다른 나라에서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는 금 태환(gold exchange) 요청이 증가합니다. 결국 금이 부족한 미국은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게 되죠.
더 이상 화폐의 가치가 금의 가치에 연동되지 않으면서 화폐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가치는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폐 자체가 무용해졌다고 할 수는 없죠. 마치 지금의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숫자로만 존재하기에 그 본질적 가치가 의심받을 수 있는 화폐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사회적 합의 덕분입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단순히 숫자로만 존재한다는 것은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더 요긴한 저장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사회 시스템을 이끌어가고 있고요.
가상자산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가장 큰 단점은 본질적 가치가 없다는 것 보다는 사기나 해킹 등 범죄에 대한 우려입니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안전하다고 해도, 가상자산 시스템 곳곳에서 사기나 해킹 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는 북한이 (해킹을 통해서) 현재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라고 나오기도 했죠. 화폐도 위조화폐가 있지만, 가상자산의 해킹은 훨씬 크고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죠.
다만, 시스템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가 (자신보다 어리석은) 특정인들이 보안에 둔감해서 생긴 문제일 뿐 자기 자산은 안전할 거라고 믿게 된다면, 가상자산은 화폐보다 부의 저장이 용이하고 가치 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는 자산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기나 해킹 등 범죄 앞에서 가상자산 시스템 자체가 위태롭다고 본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거품으로 기록될 수도 있겠죠.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어느 쪽으로 가게 될지에 대한 검증의 시기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가상자산 시장에서 더 큰 도전은 양자 컴퓨터의 본격적인 등장 이후일 겁니다. 블록체인의 보안을 더 완벽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동안 원천기술만큼은 안전하다고 믿어 온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해킹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여전히 상당히 불확실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가상자산을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킬지 말지, 포함시킨다면 어느 정도를 포함시킬지 등은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의 투자 기간과 성향에 달려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