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桃之罪(여도지죄)와 금융
중국 위나라에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미자하는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밤에 몰래 왕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당시에는 왕의 허락없이 왕의 수레를 타면 발목을 자르는 형벌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위왕은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오히려 미자하의 효성을 칭찬합니다.
그리고 또 어느날. 미자하는 복숭아를 먹다가 너무 맛이 있어서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칩니다.
왕은 복숭아가 너무 맛있다며 먹다 말고 자신에게 바친 미자하를 또 다시 칭찬합니다.
그러나, 미자하의 자태도, 왕의 총애도 계속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던 중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자 왕은 말합니다.
이 놈은 원래 나쁜 놈이라며. 자신을 속이고 수레를 탔으며, 감히 먹던 복숭아를 자신에게 바쳤다고.
먹다남은 복숭아의 죄[餘桃之罪]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먼 옛날 중국의 이야기.
그러나 오늘날 새로운 금융기법이, 금융공학이, 더 나아가 금융산업 자체에 대한 평가도 이와 같습니다.
한참 경제가 좋을 때에는
신금융기법으로 신경제를 이끌며, 금융혁신이니, 금융공학을 활용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라느니 찬사를 받습니다.
우리나라도 IB를 육성해야 한다,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어야 한다 등등...
그러나 금융위기를 맞으며
그 모든 것은 사기꾼 비슷한 취급을 받습니다.
복잡하게 리스크를 숨겨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리스크를 떠 넘겼다며.
그렇게 해서 없던 리스크까지 만들어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친 사실은 변치 않듯이...
찬사든 비난이든 금융의 본질은 변치 않습니다.
바라보는 사람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보는 사람의 시각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금융위기를 겪는다고 비난하고 싶은 사람도,
또 다시 호황 사이클을 겪을 때 금융과 금융공학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싶은 사람도
서로 다른 두 시각을 생각하며
접근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