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심형래 감독의 디워가 개봉하였습니다. 심형래 감독이나 디워에 대해 특별히 호불호는 없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들여 기술적 측면에서는 인정받았지만 내용은 빈약하다는 디워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1980년대의 디즈니사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산업이 전혀 다르다 하더라도... 돈에 의지한 영업을 한다면 결국 같은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와 연결되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던 디즈니 모습이 떠올라 잠시 끄적여 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디즈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배울 점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디즈니.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를 어린이들에게 주입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꿈을 현실화 시킨 예로 많이 드는 기업입니다. 개봉작마다 히트하고, 캐릭터를 통한 부가적인 수입도 엄청난 디즈니는 2006년 1월에는 PIXAR를 M&A하며 지상최대의 애니메이션 제국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나 그런 디즈니 역시 회사가 문닫을 지도 모를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으니, 바로 엄청난 대작이었던 '타란의 대모험(검은 가마솥, The Black Cauldron, 1985)'이었습니다. 당시로는 최고의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었고, 제작기간이 무려 10년이나 되는 엄청난 대작이었지만 흥행에서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기술력은 투입된 돈과 비례해 뛰어났지만 정작 작품의 완성도와 재미는 고객이라 할 수 있는 관객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에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당사자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타란의 대모험'으로 인한 후폭풍은 디즈니가 다음 작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었습니다. 적당한 예산에 맞추는 게 1순위였고, 동시에 일정 수준의 작품 완성도도 유지해야 했던 것입니다. 전작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과 보다 높은 작품 완성도.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동시에 잡기 힘든 두마리 토끼 같았지만 환경은 디즈니를 그래야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두 조건을 다 맞추기 위해 디즈니가 택한 것은 바로 컴퓨터 그래픽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컴퓨터 그래픽이 접목되었다고 하면 오히려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세계 최초는 아니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하였고,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위대한 탐정 바실 (The Great Mouse Detective, 1986)'이었습니다. '위대한 탐정 바실'은 그 자체의 흥행성공으로도 디즈니가 극전인 반전을 이룰 수 있는 시초가 되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디즈니에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접목하도록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디즈니는 적극적으로 작품에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였고, 19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금융과 가장 자유로운 산업 중 하나인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는 것이 안 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기업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한 두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도록 몰아간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방법은 '새로운 생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새롭다는 것이 꼭 '창조'일 필요는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에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것은 디즈니가 최초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골고 13(1982)', '렌즈맨(1984)' 등에서 이미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했었고, 디즈니 역시 'Tron(1982)'등 실사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이미 사용하였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또다른 진일보라 할 수 있지만 결국은 있던 것을 새롭게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문득 환경이 어려울 수록 자신이 않고 있는 것을 새롭게 응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