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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소형 투자회사와 기술 전문가
    손 가는 대로/그냥 2022. 11. 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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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형 투자회사와 기술 전문가

    오래 전 제가 회사채 투자를 할 때, 투자대상기업의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증권사에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산업별로 있었지만,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은 막 생겨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대부분 증권사에는 아직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없었고, 많은 곳도 한두 명에 불과했습니다.

    한두 명이 모든 기업들을 담당하다 보니 산업별 전문가가 되기는 어려웠죠. 그러다 보니 담당자들이 산업과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 아닌 논란이 있었습니다.

    혹자는 기업의 모든 것은 결국 재무제표로 나타나게 되니 산업이나 기업의 기술은 자세히 몰라도 된다고 했습니다. 반면, 다른 혹자는 회사채 발행 기업 중 상장되지 않은 기업들이 많다 보니 재무정보가 투명하지 않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산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했죠.

    으레 그렇듯이 이런 류의 대화는 결론은 없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근거와 소신이 있기에 처음부터 갖고 있던 각자의 소신 대로 가는 거죠.

    이러한 성향은 사람을 뽑을 때에도 이어졌습니다. 전자는 사람을 뽑을 때에도 이공대 출신 보다는 경영이나 회계 전공자들을 선호했죠. 반면, 후자는 이공대 출신을 선호했습니다. 전공이 다르더라도 산업이나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꺼낸 것은 벤처투자회사(VC) 사이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기업이 제약, 엔터테인먼트 등 특정 산업을 영위하는 대형 VC(CVC)들의 경우 자연스럽게 특화 분야가 있기 마련이고, 전문화된 인력을 뽑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VC들의 경우는 대부분 운용과 심사를 같이 담당하는 한두 명이 전체 산업을 맡게 됩니다. 심사역이 산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신규인력도 채용해야 할테니까요.

    그리고, 이는 회사채 때보다 더 어렵습니다. 스타트업 등 투자 대상 기업들은 회사채 투자 대상 기업처럼 재무제표가 양호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재무상태가 아닌 미래에 대한 전망에 기반을 하게 됩니다. 산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당연히 유리하기는 하겠지만, 회사채 투자할 때처럼 업력이 길고 알려져 있는 산업들이 아닙니다. 계속 바뀌다 보니 한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알기도 어려운데 담당자가 맡아야 하는 산업은 폭이 넓고 생소합니다.

    산업과 기술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기 전공은 아니어도 이공계 출신이 이해도가 높을 거라고 말을 합니다. 반면, 바이오 전문가가 과연 인공지능에 대해 얼마나 알겠느냐는 사람들은 오히려 경영 전문가가 기술이 아닌 경영환경 측면에서 살펴보는게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하죠.

    회사채 때 처럼 이 역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냉각캔 논란을 보면 교훈은 얻을 수 있습니다.

    벤처기업 중 한 곳에서 음료캔을 자체 냉각시킬 수 있게 개발했다고 발표회를 하면서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줄을 잡아당기면 언제 어디서든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었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희대의 사기극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술쪽에서 진짜 전문가들은 해당 기술이 특허 측면이나 상용화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회사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설명상으로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 들이었죠. 

    또한, 기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소비자 측면에서 상용화 가능성을 의문시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술을 적용할 경우 캔이 너무 커지게 됩니다. 휴대하기 좋게 개발했는데, 정작 휴대하기 불편한 사이즈가 되고 가격은 또 올라 버리죠. 결국 기술 자체가 사실이었어도 수요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예상들을 했습니다.

    기술을 잘 알아도 전혀 몰라도 부정적이었는데, 그러면 누가 그렇게 투자에 열광을 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어설픈 전문가들의 활약 덕분이었습니다. 진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전문가라고 하면서 투자안을 검토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의견에 동의를 하고, 오히려 부풀려 말하게 됩니다.

    회사의 기술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면 설명하던 사람이 "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라고 반론을 하면 전문가로서 권위는 떨어지게 됩니다. 아니면 기술적 측면에서 반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본인이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회사의 설명에 다른 전문용어 몇개를 추가만 하고 회사의 설명을 반복해서 말하면 설명하던 사람은 말합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시군요. 바로 이해하시네요." 그러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주위사람들에게 전문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죠. 그러다다 보니 어설픈 전문가 흉내를 내는 사람들은 훨씬 쉬운 후자를 택하게 됩니다.

    거기에 그들의 실적에 대한 평가 역시 기술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닌 투자 유치금액이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물론 진짜 전문가가 가장 좋겠죠. 하지만, 어설픈 전문가를 뽑는 것 보다는 '난 기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소비자 측면에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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