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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가는 대로/그냥 2023. 1. 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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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내가 나온 학과는 정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네 개의 반으로 나뉘었는데, 같은 과, 같은 반, 같은 학번조차도 졸업할 때까지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렇게 인원이 많았는데, 신입사원 때 업계에서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들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들 더 좋은 분야에서 일하는지.

    그러던 중 업계 사람의 소개로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다는 동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자였는데, 군대를 안 갔다 와서 저보다 3년 먼저 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제가 막 사람들을 알아갈 단계였던 반면 그녀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죠.

    업계에 같은 과 동기가 있다며 사람들이 소개해 줘서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같은 과, 같은 학번, 심지어 같은 반이었는데 서로 처음 보는 거였습니다.

    사실 반으로 나뉘어도 사람들이 많아서 모르는 동기들이 많았으니 그럴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자였습니다.

    지금 학번 중에는 우리과에도 여학생 비중이 더 높다고 들었지만, 우리 학번 중에는 여학생이 거의 없었습니다. 반이 다르더라도 여자 동기들은 다들 알고 있었죠. 여자 동기는 나를 모르더라도.

    업계 사람들은 둘 중 한 명은 학교를 속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속이고 있는 사람이 저라고 의심을 했죠.

    기분은 안 좋았지만, 이해는 갑니다. 아무래도 3년을 알고 지내던 사람을 의심하는 것 보다 안지 얼마 안되는 사람을 의심하는 게 쉬울테니까요.

    동기들을 만났을 때 그런 여학생이 있었냐고 물어봤습니다. 친구들은 말했죠. 우리반은 물론, 우리 과 전체와 우리 옆과의 동기와 1년 선배, 1년 후배 중에 그런 이름의 여학생은 없었다고.

    친구들 중에는 그 여자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거였죠.

    ***

    저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저는 분교를 나왔지만 본교를 나온 척하다가 들켜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며 맡은 업무가 조금씩 바뀌었고, 그러면서 서로 볼 일도 없어졌고, 그런 말을 들을 일도 없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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