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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 이야기 1손 가는 대로/그냥 2010. 6. 22. 21:09728x90
오늘은 갑자기 헌혈을 하고 싶어졌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을 앞두고 응원을 하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날은 헌혈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라고나 할까?
나는 당분간은 어차피 힘쓸 때도 없기에...
헌혈을 하러 가면서 첫 헌혈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3 어느 날 등교길. 평소 다니던 그 곳, 그 시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저... 헌혈 하고 가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이쁜 얼굴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은 청순해 보였다. 창백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하얀 피부. 이 시간에 이런 곳에? 뜻밖의 상황에 나는 당황해서 말을 하지 못했다.
돌아선 나를 보자 여인은 갑자기 웃었다.
"고3이구나."
어떻게 아냐고 말하려는 순간 당연히 알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밖에서도 달고 다니던 배지는 학년마다 색깔이 달랐으니까.
"네."
"공부하느라 피곤할텐데, 안되겠네. 그 대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붙고, 그러면 꼭 헌혈하러 와야 한다."
학교에 가서 난 등교길에 있었던 일을 친구들한테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헌혈차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헌혈차가 있었던 적 한번도 없었다. 더구나 꼭두새벽부터 헌혈하라고 하는 경우가 어디있냐?"
"그러니까 신기하다는 거지."
"혹시 너 귀신 본거 아니야? 피가 부족해서... 너 그 여자 따라 갔으면, 피 빨렸을 거다."
아무도 믿지 않았고, 시간은 흘렀다. 대학에 붙고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보게 된 헌혈차. 갑자기 그때 약속이 떠올라 난 차안으로 들어갔다. 그게 첫번째 헌혈이었다.
벌써 첫번째 헌혈한지도 20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 20번을 못했으니, 1년에 1번도 안한 셈이지만. 헌혈을 하며, 주위를 본다. 오늘은 헌혈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들 나보다 어려보였다. 그러자 이렇게 헌혈할 수 있는 것도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젊었을 때는 내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올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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